Go Back to Mourning Heat(열곡(熱哭))(2024)  




꼬리를 삼키는 연습: Mourning Heat




2024.08.08.(목) - 08.11.(일) 16:00 - 20:30
TINC, 성북구 삼선동 4가 37 @this_is_not_a_church
퍼포먼스: 매일 18:30, 19:30 (20-30분 소요)



울음을 삼키는 방법

 울음은 열로부터 비롯된다. 이 소리는 열의 순환적인 성질로부터 비롯된다. 열은 위계에 상관없이 그저 높고 낮음의 온도차이 안에서 에너지 균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진동한다. 이 과정에서 울음은 발산된다.

'대신 울어주는 장치'는 이 보이지 않는 열로부터 공기흐름을 만들어 소리를 발생시키고, 파이프의 너비와 길이에 따라 다른 음색과 음량의 울음을 생성한다. 퍼포머는 촛불과 같은 발열장치와 세라믹 파이프관을 선택하여 함께 공명하듯 운다. 다만 이 장치의 울음은 지속적이거나 일정하지 않다. 열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울린다. 때로는 차오르 듯 밀려오고, 때로는 멀어진 듯 희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울음을 삼킨다는 것은, 감정의 폭발을 억누르고 미묘한 균형속에서의 그 감정을 천천히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울음은 여러 감정의 복잡성과 깊이를 강하게 표출하는 방식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서 소화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대신 울어주는 장치'는 이러한 과정을 다소 기계적으로 표방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열이 사람의 감정을 대신하여 발산하는 주체가 된다. 마치 슬픔이나 고통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차분히 받아들이며 소화하는 과정을 상징화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는 장치’는 마치 전통 장례 문화인 '대곡(代哭)'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상가에서 상주 대신 울어준다는 뜻의 ‘대곡’은 고인에 대한 애도와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여, 여운을 대신 표현해주어 고인과의 이별을 도와준다. 슬픔을 더 크게 표현하기 위해서 전문 울음꾼을 고용하던 풍습은 사라졌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이고아이고..”라던가 곡소리를 함께 내어주는 형태로 아직 잔흔해있다.

이러한 풍습에서 울음의 크기와 길이는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애도는 단순히 슬픔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과 함께한 물리적 신체와 더불어 비물리적인 추억을 둘다 떠올리며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김보은은 몸이라는 신체를 좀 더 물질적으로 인식하여 접근한다. 작가는 그 중에서도 열에 주목하여 이를 개념적, 물리적 매개체로 인식하며 생물과 비생물, 물질과 생명,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생의 증거로서 변화하는 체온과 이를 매개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신체의 살아있음을 측정한다. 지난 전시 《흐르는 몸은 썩지 않는다》에선 체온과의 온도차로 전류를 생산하는 의자를 통해 빛을 만들고 그 빛을 이끼에 쬐어 광합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작업은 미셸 세르의 열역학을 기반으로 존재론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상대적으로 흐르고 순환하는 열의 성질을 탐구한다. 열을 통한 상호작용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감정의 표현 방식 중 울음과 열을 매개로 하여 존재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본다. '대신 울어주는 장치'를 통해 물리적인 울음소리를 내고 그 소리의 지점을 찾아내는 행위를 통해 생명-물질-비인간-인간의 균형적인 순환관계를 더듬어 보는 시도하려고 한다.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우로보로스, 꼬리를 삼키고 있는 뱀의 형상처럼 말이다. 우로보로스는 시작과 끝이 없는 탄생과 죽음, 존재와 부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적 성질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인식되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순환성을 탐구하며, 욺 즉 우는 행위와 열의 에너지의 지속적인 흐름을 통해 단순한 현상에서 벗어나 시작과 끝의 경계에서 무한 반복을 탐구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게 된다. 만물이 생기고 움직이는 에너지이자 동시에 한없이 소멸하는 열의 성질을 통해, 탄생과 죽음을 끝없이 반복하는 우로보로스와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생의 탄생과 죽음은 울음과 불가분의 관계로 이어져 있다. 태어날 때의 우는 소리는 호흡의 일종으로서 무사히 태어났음을 알리는 첫 신호가 되기도 하며, 함께 마지막의 순간에 애도를 표하는 방식으로 전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열과 함께 울음을 냈던 공기는 결국 대기 중으로 흩어질 것이다. 비록 차가운 기운으로 남아버린 물리적 신체처럼 열은 식겠지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은 형태로 존재할 것이고 다시 주변에 에너지로, 따뜻함으로 스며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울음은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한다.


박효가






작가노트

김보은

1.
지난 개인전 “흐르는 몸은 썩지 않는다”에서 천문학자이자 내 친구인 만근과 생명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흐르는 온도, 그 중에서도 체온, 그 체온이 남았던 자리 그리고 체온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 친구는 전시를 보고 나에게 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별은 죽으며 초신성 폭발이 라는 장대한 죽음과 함께 우주로 환원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별의 죽음 이후의 우주는 그 별이 탄생하기 이전의 우주와 조금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별은 죽고 사라졌지만 그 별이 죽으며 흩뿌린 물질의 변화로 인한 미세한 차이는 우주의 풍경을 좀 더 복합적으로 만들고 우주 어디선가 풍요로운 생명활동으로 탄생하며 물질의 순환으로서 환원되는 것이다.

2.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어떤 대상이건. 최근에 오랫동안 물리적인 시간을 보내던 대상이 생명을 다하는 경험을했다. 그 몸은 그곳에 있었지만, 그 대상은 그곳에 없었다. 그저 식어버린 몸 만이 있었다. 아직 그곳에 있는 거 같다는마음으로 장례라는 절차를 알아보는 과정은 고약했다. 뒤틀린 속으로 장례가 왜 필요한지 찾아보게 되었다. 장례는 누구를 위한 걸까. 왜 치러야 하는 걸까. 그렇게 알게된 것은 장례는 죽은 몸을 떠나보내는 의식이고,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의식이는 것이었다. 국가마다, 종교마다, 시대마다 조금씩은 다른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남아있는 자들에게 질병을 옮기지 않고, 떠난 자와 남겨져버린 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같은 공간과 시간을 보냈던 익숙해졌던 그 몸을 떠나보내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3.
세라믹은 기묘한 물질이다. 어떨 땐 물과 같고, 어떨 땐 돌과 같다. 수 만년에 거쳐 퇴적된 작은 미네랄 알갱이들이 물과 만나고 그 뒤섞인 물질에 다시 물리적인 힘의 개입으로 반죽되고 열이 가해질때 이 물과 같았던 덩어리는 다시 광석이 된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화산과 지질활동으로 인하여 수만년에 거쳐서 변화하게 되지만, 인간의 개입은 이 수 만년의 시간을 단축된다. 흐르고 늘어나고 짓이겨지고 반죽되어 단단히 뭉쳐진 덩어리는 열과 압력으로 인하여 하나의 금속처럼 굳어지고, 그렇게 굳어져 광물이 된 물질은 때로는 수 천년을 살아 오늘날에도 발굴되기도 하고는 한다. 이 금속같기도 한 세라믹은 일렉트로닉 부품에서는 흥미롭게도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절연체로 쓰인다. 전신주에 걸려있는 부분에도, 작은 저항에도, 필요한 용도에 따라 물처럼 형태가 변화되고 열을 만나 단단해져 일상생활 여러곳에 쓰이고 있다.

4.
열을 울게 하는 방법:

열을 울게 하려면 먼저 열을 발산하는 장치, 그리고 애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코일이 달아오르면 자신에게 맞는 튜브를 우선 찾는다. 튜브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튜브 안으로 코일을 천천히 넣으며, 세라믹과 코일이 내는 진동, 열이 울음을 내는 점을 더듬어 간다. 열이 작은 울음을 내기 시작하면 그곳에 잠시 머무른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공기는 열을 만나 증폭되고 관을 통해 위쪽으로 흐르는 열은 울음이 되어 울려퍼진다. 모든 과정은 열과 공기의 흐름, 그로 인한 미세한 떨림을 감각해야 울음을 낼 수 있다. 그 서로 미묘하게 다른 세 울음이 같이 울려퍼질 때 공명하게 된다.






주최,주관: 김보은(Bon Kim) @bon_kim_art
기획: 박효가 @_hyogahyo
코디네이터: Shawn Pak Hin Tang @shawnzytph, Daniel Vadász @daniel_vadasz
퍼포먼스: 윤단비 @b_tamin, 임영 @yollpl, 전혜인 @jhy_ein
그래픽 디자인: 박채희 @chae.hee.park
동영상 촬영: 김덕만
사진촬영: 최철림
설치도움: 조은상, 윤정우


감사한 분들
전기수 / 성용희 / 이진솔 / 정만근 / 수건과 화환
Ralf Baecker / Andrea Sick / Qianxun Chen / Valentina Gaete / Victor Artiga Rodriguez
Milton Raggi / Ute Alexandra Fischer / Nicola Essig / Nicolas-Friederich Hohlt / Karl Robert Strecker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