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Back to Mourning Heat(열곡(熱哭))(2024)  




고요의 소산(疏散)을 소리내어 마주하기


이우솔



불 너머의 소리를 듣자...
홀에 들어서자 어둠 가운데 필라멘트의 흐릿한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달궈진 필라멘트가 일으키는 작은 빛은 단지 어떤 점으로 보여질 정도의 작은 권역 안에서 아른거린다. 세라믹 재질의 받침대와 열을 매개하는 퓨즈로 구성된 아파라투스(apparatus)는 마치 엄숙한 제례를 위한 도구와 같은 모습으로 작은 군집을 이룬다. 그것들은 작가의 손길의 빚어지는 과정을 경유하여 각자가 미묘하게 다른 형태로 불을 밝히고, 곧이어 낮은 조도로 불빛을 내는 필라멘트 사이 사이를 거니는 퍼포머들은 거룩한 하나의 과업을 구행하듯 차분한 동작으로 세라믹관을 들어 필라멘트와 연동시키고 곡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작가는 죽음을 향한 울음을, 에너지의 역학적 전환 메커니즘으로 물화하여 내재적인 경험 안에서 보편세계의 이해로 나아간다.

마주하는 태도로서의 슬픔
김보은 작가의 전시 <꼬리를 삼키는 연습>은 대곡(代哭)이라 불리는 행위를 주제로서 차용한다. 대곡은 장례 기간동안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장내에 울리게 하기 위하여, 상주가 아닌 누군가 대신 곡을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곡소리는 망자를 향한 감정과 예를 표하기 위해 큰소리로 공간을 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울음으로 몇 시간을 지새기 어렵기에, 대곡이라는 부수적 수행이 등장한다. 이는 망자를 향한 울음이 개인적인 감정의 발산 이상으로 음악적이고 의례적인 의미를 포함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대곡과 오열이 공명하는 상에서 “어떤 울음이 진실된 울음인가?”하는 행위와 감정의 구별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슬픔의 주체조차도 오랜 시간의 장례가 지속되는 시간 동안 울음이 끊기거나, 힘이 다하면 단지 소리로만 구성된 ʻ가짜울음'을 통해 음악적 요소로서 공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이는 장례가 망자를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한 희망으로 다수의 주변인이 모여 자리를 갖는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참여한 개인들은 슬픔에 리듬과 강세를 부여해 제의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거나 초월적 대상에 관한 스스로의 태도를 정의하며 감정을 구조화하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감정은 한편으로 언어가 되고 음악이 된다. 곡은 언어이면서 음악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기 이전의 소리가 서려있다.

이처럼 퍼포먼스에서 ʻ대곡’은 단지 애도행위에서 애도의 주체의 슬픔과 울음사이에 거리를 두고 두 가지의 구성적 관계에 관해 해체·분석하려는 계기로서만 은유될 뿐이다. 퍼포먼스에서 무게있게 다뤄지는 것은 행위로부터 감정의 가상성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표현이 스스로 형식화되는 매커니즘 속에서 발견되는, 구분할 수 없는 희미한 경계 안에 새겨진 감응의 소리다. 김보은 작가는
소리가 들리는 곳 안쪽의 기원으로 돌아가기 보단, 소리가 울려나가는 공간과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회귀의 존재론에 도달한다.

죽음과 삶의 청각성:곡
죽음은 언제나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곳 바깥에 위치해 있다.그 너머의 이야기는 애도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가까운 죽음의 목격을 통해 개념적으로만 주어졌던 생과 죽음의 개념을 삶의 특수한 계기로서 담 너머의 곡 소리 처럼 청각적 반복으로 들려온다.애도행위를 통해 개인은 현상에 관한 목격을 넘어 존재 의미와 윤리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도래하는 대상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실체없이 울려 퍼지며 세계를 감싸고,이제 더 이상 죽음은 그것을 경험하기 전과 온전히 다른 무게와 의미로 다가오게 되며, 그러한 사건의 잔흔이 이미지로서 개인의 구체적인 기억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완전이 객관적인 것으로 개념화 해낼 수도 없다. 죽음을 애도하는 자는 자아에 깊게 파묻힌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보편적 존재론을 마주할 수 있다.만약 죽음에 이와 같은 청각적 특성이 내재해 있다면 곡이란 죽음의 말소리에 대한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울음(곡)은 개인적 차원의 감정적 표출이자 해소이면서 동시의 사회적 차원의 의례행위이다.1 조선의 예법《국조오례의》에선 장례, 제사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행사에 참여한 인원들의 우는 순서와 방식이 서로 다르게 명기되어 있다. 근·현대에서도 장례에서 곡은 ʻ울음'과 달리 슬픔을 현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울음을 포함하기 때문에 곡은 매우 과장되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음악적이다.2 곡은 한편으로는 감정에 관한 일차적인 해소행위이기도, 그것이 의미와 맥락안에서 대상을 향한 언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일정한 곡조를 지니고 ʻ연주’되는 음악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 내의 주요 곡들의 주 선율을 공통적으로 이루는 ʻ라' 선법은 계면조라 일컬어지며 전통적으로 음악에서 슬픈 심정을 표현하는데에 사용된다.3 곡을 하는 이가 구성하는 음법은 우연적이지만 곡의 소리의 높낮이가 머무는 지점은 소리가 그러하듯 감응에 있어서도 공명의 지점을 그린다. 울음과 슬픔은 곡을 하는 어떤이로부터 다른 이로 전달되며 이러한 선율의 연결은 언어 이전에 고대의 소리내기,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오열로 부터 의례화된 곡의 가운데에서 떠나보내는 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호흡하는 관
퓨즈의 빛과 열이 일렁이는 전시공간 내에서 퍼포머의 손길은 바닥에 놓인 파이프를 향한다. 세라믹으로 제작된 파이프는, 전선과 퓨즈의 열전달 메커니즘에 변주를 일으킨다. 작가가 손으로 직접 제작한 세라믹 관들은 서로 다른 두께와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같은 필라멘트에서 비롯한 열을 전환 하더라도 다른 음정의 소리를 낸다. 전시의 제목 <꼬리를 삼키는 연습>은 우로보로스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아직 직선적인 뱀을 연상시킨다. 직선형의 파이프는 우로보로스적 원형과 반대항으로서 시작과 끝이 명확한 직선적 형태를 하고있다. 퓨즈의 선을 따라 스위치로 귀결하면 만나게 되는 Input과 Output의 O/의 형태적 대조를 따르는 파이프의 형태는 원형으로 귀결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그 반대항에서 직선적인, 아직 영원에 도달하지 않은 지상의 언어로서 형태화한다.

인풋과 아웃풋,단선적 전기의 흐름과 기계적 물성을 가진 전기 장치와 만나는 것은 작가가 직접 만든 세라믹 파이프다. 재료에 관해 작가는 “화산의 지질활동으로 인한 수만년에 거친변화를 인간의 개입으로 단축시킨, 열과 압력으로 굳어진 재료"라 이야기한다. 첫 눈에 관람자가 인식하게 되는 것은 지금 여기의 퓨즈의 불빛이 암시하는 ʻ열의 현재성'이다. 그것은 짓이겨짐 속에서 견뎌낸 열을 과거의 기억으로 간직한 세라믹과 만난다. 전기와 퓨즈로 이어지는 기계장치와 손으로 빚어 오븐 속에서 구워진 세라믹의 접합은, 곧 열의 서로 다른 시간성의 접촉이다. 퍼포먼스에서 열이 생 혹은 죽음을 암시한다는 점을 염두해 두었을 때,서로 다른 열의 시간성을 지닌 두 재료는 곧 삶의 태도에 관한 다른 시간성의 맞닿음으로 관람자를 인도한다. 장례라는 행사, 애도라는 개인의 태도, 울음이라는 목의 떨림과 소리의 발산은 이러한 행위들은 존재의 흔적과 존재의 지속이라는 두 가지 다른 시간성의 중첩 사이에 머무른다.

관이 뜨거운 퓨즈를 감싸며 울리는 소리는 마치 성대의 울림이 내는 울음소리와 목소리 그리고 호흡의 연장된 관으로서 피리 사이에 위치한 반인간의 기이한 울음을 낸다. 전통음악에서 피리가 말의 읇조림이 음으로 전환되는 경계의 소리를 전달하는 악기임을 고려하면4 파이프 관은 목소리, 즉 직접적인 중심점을 지닌 하나의 발성이기도 하면서, 악기로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주인없는 목소리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관을 들고 퓨즈와 상호작용 하는 수행자의 동작은 구체적 연주법을 지닌 악기의 수행이지만, 가끔씩 아주 좁은 권역에서 이따금 수행자 본인에 귀에만 들어갈 정도로 희미하게 떨리는소리는,마치 망자를 떠나보낸 이가 본인만 들을 수 있게 중얼거리는 듯5,그 소리를 자신으로 거두며, 기악 퍼포먼스와는 다른 차원의 움직임·사건을 발생시킨다.

슬픔의 공명:화음
작가는 직접적으로 파이프와 퓨즈간의 소리냄을 세 명의 퍼포먼서가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여 공명을 일으킨다. 개인적으로 수행되었던 동작들은 마지막에 가서 동시적인 것, 의례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개인에 범주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초월적인 사실 앞에서 호흡과 소리는 파편화되고 무너져 ʻ오열'의 모습으로 감정은 터져나가지만, 그것이 시간의 지속성 앞에서 호흡은 리듬을 되찾아가고 주변부의 공동체를 의식하면서 분할되었던 감정도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진다. 슬픔은 물론 지속되지만 그러한 지속 안에서 그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곡을 연속적으로 이어나간다. 이제 곡소리는 개인의 감정이 터져나가는 파열의 지점에 서있지 않고, 공동의 접합지점을 향해 멀리 퍼진다. 개인으로부터 보편으로의 회귀는 우로보로스를 연상시키는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부터 한번 은유되었던 살아감과 죽음 전체라는 운동계의 원리다. 작가는 기계장치의 변환기가 갖춘 ʻ감각전환의 성질'을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태도로 승화하는 매개도구로서 다룬다. 작가의 아파라투스(apparatus)와 퍼포먼스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ʻ변환’이다. 전기에너지로 부터 열에너지로의 변환, 촉각에서 청각으로의 변환, 이들은 마치 함수처럼 입력된 값의 어떤 잔여도 없이 남김없이 출력의 값으로 전환시키듯 작동하며 관람객은 그러한 개념적, 감각적 전환을 따라가며 흐름을 그려나간다.

그러나 김보은 작가의 작업에서는 한편으로 변환되지 않고 남는 존재들이 이야기를 전달한다. 자글하게 주름진 파이프의 모습으로 흙의 수분의 기억이 남아 있고, 퍼포먼스가 끝난 이후에 만져본 파이프의 잔열 속에 퍼포먼서들의 동작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된 것으로 도저히 승화시킬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의 자국도 남아있다.6 울음은 무엇보다 남김없이 해소 해버리는 감정의 분출 행위이지만, 공동체적 곡으로서의 대곡을 지향한 울음은 이번 퍼포먼스에서 단순히 해소되지 않고 남는 것들을 더 명확하게 가리킨다. 그러므로 김보은 작가의 퍼포먼스는 열과 소리사이의 변환이 아닌 사이 자체의 소산을 다룬다.

소리 너머 소산(疏散)하며 지속하는
생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흩어져버리는 열의 보편적 경향을 거스르면서 자신을 존속한다.7 죽음은 마침내 열을 방출하며 열역학적 평형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방출된 열에너지는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하게 되며 생명의 범주를 넓힌다.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소용돌이나 회오리바람, 불꽃처럼 명핵비 무생물적인 활동 중심을 포함하는 “에너지 소산 구조"라는 큰 부류 속에 생명을 포함시켜 생각했다. 소산(dissimilation)은 혼돈스러운 상태로 부터 자연스러운 질서가 탄생하는 ʻ혼란으로 부터의 질서'를 말한다. 소산 구조는 무엇을 유지하고 만들어내는지보다 무엇을 버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에너지 소산계는 “유용한" 에너지 형태를 받아들이고 덜 유용한 형태(특히 열)는 내보내거나 흩어지게 함으로써 자신을 유지한다.8

불안한 진동과 떨림들을 통해서 보편적인 음의 공명을 되찾아가는 퍼포먼스는 불안정한 에너지의 요동으로 부터 평형의 구조가 형성되는 소산구조의 역설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열역학적 생명관이 이야기하는 생의 흐름,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열의 이야기를 소리로서 변환하여 들려준다. 이야기에 끝은 없다. 다만 ʻ꼬리도 머리도 없는(aphalle et acephale)’9 의미-없음(non-sense)이 우로보로스로 변이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죽음과 장례의 관하여 “생의 지속성을 현현시키는 것”이라 말하며 망자의 건너편에 서있는 우리들의 존재의 지속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서 장례행사를 묘사한다. ʻ소산구조’라는 단어가 해체와 결함의 공시성이라는 의미상 모순을 내재하듯 죽은이를 떠나보내는 의례에서도 흩어져 버리는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무언의 공명이 존재한다.

소리가 잠들었을 때, 잠깐의 시간동안 정적이 지속된다. 슬픔의 음을 겨냥하는 공명의 흔적 아래에서 공기를 타고 이동하였을 열에너지의 경로를 상상해본다. 망각되지 않는 기억 안에서 열에서 소리로 변환된 공기의 파동은 여기 빈자리에 자리잡는다.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10




1 이도현, 「곡소리 연구 -울음의 음악적 표현방식에 관하여-」,『 한국민요학 제70집』, 한국민요학회, 2024, 70p
2 이용식, 「진도 상장례 음악의 공연학적 구조와 음악적 상징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26집(국립국악원, 2012), 281p
3 이도현, 「곡소리 연구 -울음의 음악적 표현방식에 관하여-」,『 한국민요학 제70집』, 한국민요학회, 2024, 89p
4 “일본의 전통 극음악 쇼우카의 피리 ʻ푸에'의 연주자는 언어적 소리의 흐름 속에서 음악의 정수가 구성된다. 이는 말소리와 음악소리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팀 잉골드, 『라인스 』, 김지혜 옮김, 포도밭, 2024, p.79)
5 “곡소리의 구조는 탄식과 울음 부분으로 이분화 할 수 있다. 그 중 탄식은 말하듯 읊조리면서 주서붙이는 붙임새가 주를 이루고, 선율감이 미미하게 나타난다.” 이도현, 「곡소리 연구 -울음의 음악적 표현방식에 관하여-」,『 한국민요학 제70집』, 한국민요학회, 2024, 70p
6 “나의 슬픔이 수렴되는 것, 일반화되는 것(키르케고르)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그건 마치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훔쳐 가버리는 것 같아서다.”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2, p.81)
7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생명이란 무엇인가』, 김영 옮김, 리수, 2016, p.115
8  같은 책, p.33
9  장 뤽 낭시, 『코르푸스』, 김예령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2, p.16
10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2, p.237